아깝다는 생각은 허영일까
얼마 전 회사에서 모든 직원의 유선 전화기를 일괄로 교체해주었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누군가 사용하던 전화기를 사용해야 찝찝하던 차, 새 제품으로 교체해준다니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사내 익명 게시판에 “멀쩡한 전화기까지 모두 교체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오… 그렇네”라고 생각하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고 한나절이 지났을까? 댓글이 꽤나 많이 달린 그 글을 다시 눌러보았다. 엄청난 비공감 수와 “바꿔줘도 난리”, “내구연한 지나서 바꾼건데 무슨 문제”라는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전화기를 교체해준 총무부서는 내구연한이 경과된 제품을 일괄 교체하였으며, 그간 고장이 잦아 직원들의 불편이 많았다는 해명 아닌 해명글까지 올려두었다.
솔직히 내 전화기는 멀쩡했다. 누렇게 바랬긴 했지만, 새 전화기와 기능적인 차이는 전무했다. 사내 유선 전화기라는 게 통화되고, 착신전환되고, 뭐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래서 수많은 직원들의 모든 전화기가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이 나는 솔직히 불편했고, “아깝다는” 글쓴이의 의견에 공감했다.
나도 거의 매일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는 사람인 주제에 이런 말을 적는 게 떳떳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꽤 놀라웠다. 아니,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 샤이한 편이라 댓글을 달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쿨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게 이런 부분에서도 나타나는 것 아닐까?

물론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가능하면 쓰레기를 줄여보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반드시 환경 때문은 아니다. 그게 내 생활을 좀 더 간편하고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 생수를 6개, 12개씩 쌓아놓는 것보다 브리타에 수돗물을 받아서 마시는게 공간을 넓게 쓰는데 도움도 되고, 분리수거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하다.
그래도 한 10% 정도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먹은 뒤에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텀블러를 들고 테이크아웃 음료를 마신 날에는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깨끗한 전화기가 생겨서 기분이 좋다. 다만, 아깝다는 마음도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멀쩡한 전화기까지 굳이 바꿔야하느냐는 문제의식도 고민해볼 문제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허영 가득한 생각을 하는건 아니겠지?